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몸이 완전히 회복하기까진 이 주가 넘게 걸렸고, 그 사이 세상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자고, 먹고, 회복을 위해 다시 자는 일이 반복되었다. 먹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내장이 빗맞아 다행이지 배에 힘을 줄 수 없어 음식물 섭취가 최대한 금지되었다. 하나하나, 천천히 나아갔다. 그 사이 여러 일이 있었다. 희망에게 오랜만에...
해당 편에는 다소 잔인할 수 있는 묘사가 있습니다. 감상에 유의 부탁드립니다. 사방이 뭉뚱그린 그림 같았다. 경계가 명확히 그어져 있지 않은, 조명도 그림자도 하나가 되어 흔들리는 세상. 희망은 처음 눈을 떴을 때 눈이 먼 게 아닐까 싶었다. 혼란스러운 세계를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두 번째로 보인 건 새였다. 또, 그 꿈이었다. 그의 행성을 거대한 ...
밑에서 꿈틀거리던 남자가 급히 일어났다. 그탓에 희망은 뒤로 넘어갈 뻔했다. 그의 등을 누군가 받쳐주었다. 희망이 뒤를 보았다. 그에게 다가와 그를 지탱해줄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괜찮아?" "…네가 했어?" 고맙다거나 하는 말이 우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를 위해 증거를 찾아 재생시켜줄 법한 사람. 누군가 만든 무대를 그대로 ...
파도가 넘실거리는 곳에서 너와 마주선 채 있었다. 나의 파도는 네게로 흘러만 갔지만 네 파도는 내게 닿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서로의 바다에 뛰어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있었다. 그러다 파도가 높게 솟았고, 물이 내 얼굴에 튀었다. 그 차가운 감각에 소름이 끼쳤다. 어느새 난 바다 안으로 몸을 향했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
내가 내 세상에 있었고 네가 네 세상에 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더 이상 내 안에 네가 없고 네 안에도 내가 없는 그때로. 어쩌면, 그렇게 되면 이제 우리는 아프지 않겠지. 서로를 보아도 웃을 수 있겠지. 어쩌면─
하얀 것이 부서져있다. 산산이 조각난 그 위로 몇 방울의 피가 있다. 그건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이 위에 있는 건 그의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것. 충동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를 핥아버려 제 안으로 삼키고도 싶었고, 묻은 부분만 간직하고 싶기도 했다. 이 얼마나 괴이한가. 이토록 갖고 싶었던 게 있던가. 그는 자신의 볼을 세게...
눈을 뜨니 침대 위였다. 주송이 방 침대에 올려놓은 듯했다. 희망은 상반신을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손에 들어찬 이물질이 느껴져 내려보니 풀 한 포기가 들어 있었다. 어제 손으로 파낸, 죽어가는 이파리였다. 손바닥이 엉망이었다. 자면서도 흙을 뭉개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는지 전신이 아플 정도였다. 힘을 얼마나 줬는지. 희망은 저린 몸을 일으키면서도 손에 든 ...
현자의 외벽은 유독 높았다. 아무나 넘기 힘들게 만들어서였다. 밖에 있는 이들이 감히 넘어오지 못하도록, 안에 있는 이들도 감히 넘지 못하도록. 권위이기도 했다. 이곳은 미래의 지배자들이 성장하는 곳이기에 아무나 볼 수 없단 뜻이었다. 희망은 고개를 한참이나 들었다. 그 탓에 벽에 가까워질수록 햇빛을 받기 어려웠다. 한때 푸르게 자랐을 꽃들은 노랗게 죽어갔...
희망은 정문 앞에서 발을 멈췄다. 맞다. 현자는 일과 시간엔 문을 꽉 닫는 곳이었다. 지금은 학생들이 오가는 시간이었다. 앞뒤 문을 막고 외부 출입을 금지하는 시간. 이 시간엔 외부로 나갈 수 없었다. 개구멍 따위라도 있다면 나갈 수 있겠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 희망은 그래서 보통 학교 구석이나 본관 도서관 따위에 가 숨어 잠들었다. 게다가 호텔 방으로 ...
라반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희망이 그를 째려봤다. "제대로 알아봤어?" "뭐?" "엔한테 들은 거냐고." "그럼 우리 엔이 말했지 누가 말하겠어." "웃기는 새끼네, 그거." 라반이 뭐라 말했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희망은 그를 무시하고 뒤쪽에 선 동기들 무리를 봤다. 그 안에 엔도 있었다. 그는 희망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안으로 도망갔다. 쟤한테 뭐라도...
꿈도 그의 편은 아니었다. 육 년 전, 거대한 새가 그의 꿈에 항상 나타나기 시작했다. 희망이 사는 행성을 전부 삼켜버린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도 희망의 꿈에서 하늘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소리를 질러도, 욕을 해도, 날아가 거대한 팔에 충격을 줘도. 그는 어떤 것으로도 아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를 때리거나 떨어지도록 하지 않았다. 내보내 주...
강의실로 가는 길은 멀었다. 하필이면 희망이 들어온 시기에 졸업한 기수는 정문에서 제일 멀었다. 그래서 보통 후문을 사용했지만, 희망과 주송이 지내는 곳은 정문에 있었다. 고작 후문으로 가자고 이동 수단에 타는 것도 웃겼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제 방에 돌아가고 싶었다. 희망은 학교에 다니는 게 귀찮았다. 배워도 쓸모없는 가치들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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